1. 서론: 넘어진 내 삶,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?
살다 보면 누구나 넘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.
자신감도 사라지고,
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지치고,
심지어 하나님 앞에서도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는 때가 있습니다.
요한복음 8장에는 간음하다 잡힌 여인이 나옵니다.
사람들은 그녀를 정죄했지만,
예수님은 조용히 그녀를 일으켜 세우십니다.
“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,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.”
오늘 묵상할 찬양
〈주님이 일으키시네〉는
바로 그 은혜를 노래합니다.
넘어진 자리에서, 다시 서게 하시는 그 주님의 손길을
찬양과 함께 깊이 느껴보세요.
2. 본론: 찬양으로 고백하는 회복의 은혜
🎵 찬양 가사
나의 주, 나의 힘
나를 붙드시는 그 손
넘어져 있던 내 삶을
주님이 일으키시네
나는 깊은 곳에 있었고
어둠 속에 숨고 있었네
그 어떤 말도 들리지 않던
그때 주님이 오셨네
나의 주, 나의 힘
나를 붙드시는 그 손
넘어져 있던 내 삶을
주님이 일으키시네
나를 찾는 사람 없을 때
주님만 내 이름 부르셨네
눈물이 멈춘 그 순간
나는 다시 살아났네
그 손이 나를 살리셨네
그 사랑이 날 세우셨네
다시는 무너지지 않으리
주와 함께 걷게 하소서
나의 주, 나의 힘
나를 붙드시는 그 손
넘어져 있던 내 삶을
주님이 일으키시네
주님이 빛을 비추시네
나는 다시 일어나리
🔍 묵상 포인트
1. 주님은 우리가 가장 낮을 때 찾아오십니다
“그때 주님이 오셨네”
예수님은 우리가 숨고 싶은 순간,
아무 말도 들리지 않는 어둠 속에서도
가장 먼저 찾아오시는 분이십니다.
2. 주님의 손은 정죄하지 않고 일으키십니다
“나를 붙드시는 그 손 / 주님이 일으키시네”
사람들은 손가락질했지만,
예수님의 손은 붙들고, 일으키는 손이었습니다.
그 손이 오늘도 내 삶을 다시 일으킵니다.
3. 예수님은 나를 이름으로 부르십니다
“주님만 내 이름 부르셨네”
내가 잊힌 것 같을 때도
주님은 내 이름을 기억하시고,
다정하게 부르십니다.
4. 다시 무너지지 않게 붙드는 힘, 그것은 사랑입니다
“그 사랑이 날 세우셨네 / 다시는 무너지지 않으리”
우리가 다시 서는 힘은
자기 의지가 아니라
주님의 사랑과 은혜입니다.
3. 결론: 지금도 당신을 붙드시고 계신 손
예수님은
넘어진 여인에게 “일어나라” 하지 않으셨습니다.
다만 정죄하지 않으셨고,
그녀가 스스로 일어날 수 있도록 빛을 비추셨습니다.
오늘도 주님은
당신을 정죄가 아닌 은혜로 바라보고 계십니다.
이 찬양의 마지막 고백처럼,
“주님이 빛을 비추시네 / 나는 다시 일어나리”
그 은혜로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.
4. 기도와 Q&A
🙏 오늘의 기도
주님,
넘어진 나를 정죄하지 않으시고
조용히 손 내밀어 주셔서 감사합니다.
모든 사람의 시선이 무겁고
내 마음도 스스로를 미워할 때
주님만이 나를 사랑으로 일으키십니다.
오늘 다시
당신의 빛 가운데 일어서게 하소서.
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. 아멘.
❓ Q&A
Q1. “주님이 일으키신다”는 것을 어떻게 경험할 수 있나요?
→ 마음이 무너졌을 때,
말씀이나 찬양, 기도 중에 느껴지는 위로와 감동이
바로 주님의 손길입니다.
예배의 자리에 나오면 그 은혜를 더 깊이 체험할 수 있습니다.
Q2. 넘어진 삶에서 다시 일어나는 데 가장 필요한 건 뭔가요?
→ 정죄가 아닌 은혜,
비난이 아닌 이해,
사랑의 시선입니다.
그것을 오직 예수님 안에서만 온전히 만날 수 있습니다.
Q3. “다시는 무너지지 않으리”라는 고백이 가능할까요?
→ 넘어질 수는 있어도,
다시는 완전히 무너지지 않는 삶이 있습니다.
그건 주님이 붙드시고 계실 때 가능한 일입니다.
내가 아닌 주님이 나의 힘이기 때문입니다.
'찬양 묵상' 카테고리의 다른 글
요한복음 10장 찬양 묵상|선한 목자의 음성을 따라 걷는 삶 (0) | 2025.07.07 |
---|---|
요한복음 9장 찬양 묵상|주님이 열어주신 눈으로 빛을 바라보다 (0) | 2025.07.06 |
요한복음 7장 찬양 묵상|갈급한 내 영혼에 성령이 흐르기 시작할 때 (1) | 2025.07.01 |
요한복음 6장 찬양 묵상|세상은 허기져도 주 안에 생명이 있습니다 (1) | 2025.06.29 |
요한복음 5장 찬양 묵상|절망 속 기다림에도 주님은 오십니다 (2) | 2025.06.26 |